전초전: 최악의 배우들 최악의 날씨 최악의 스텝 최악의....
파카를 입고도 찬바람이 파고드는 겨울바다. 그곳에 '영화사상 최고의 섹스 영화'를 꿈꾸는 감독과 배우들배우들, 스텝들이 있다. 추운 겨울 바닷가에서 손바닥만한 비키니에 몸을 가린 배우들은 퍼런 입술로 이를 딱딱 부딪치고 발랄한 피서객이 되어야 하는 엑스트라들은 얼어붙었다. 엑스트라들을 다 내보내고 배우들을 무지막지하게 다그쳐서 '키스씬'을 감행하는 감독. 그러나 어색하기 짝이 없다. 욕심 같아서는 하루 종일이라도 키스만 시키고 싶지만 해도 지고 게다가 베드씬이 남아있다. 내일을 위해 힘을 아껴야지!

탐색전: 배우사정 볼 것 없다! 꼬셔라 얼러라 혼내라...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될 베드씬을 앞두고 감독과 스텝들은 물론 배우들도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다. 서로가 철천지 원수인양 으르렁거리는 두 배우를 번갈아가며 어르고 달래는 감독. 철부지 아이 같은 여배우에게는 '네가 최고야. 넌 정말 천재야.'를 외치고 고집불통에 능구렁이인 남자배우에게는 "넌 특별해. 너만 믿어."를 되뇌어야 한다. 그러나 배우들의 불평과 스텝들의 하소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누가 섹스 영화찍자고 그랬어?!

결전의 순간!: 벗겨라! 그러면 웃을 것이다!
마침내 결전의 순간, 슛이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배우의 성기에 맞지 않아 새로 제작해야하는 가짜 페니스,발도착증이라 양말을 벗을 수 없다고 버티는 남배우. '삽입은 안 할 거죠?'를 집요하게 캐묻는 여배우 등 시련은 이어진다. 심지어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동선에 대한 아이디어가 꽉 막혀버린 감독.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해야할 지 몰라 조감독과 밀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배우들의 마음이 되어 시나리오대로 동작을 감행해보는데... '과연 영화사상 가장 유쾌한 베드씬'이 탄생할 것인가?


매우 표현하기 어려운 섹스 장면의 절정을 찍기 위해 두 연기자를 지도하는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 브레야 감독은 영화제작이라고 불리는 신비한 과정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이 영화의 제작의도를 밝힌다

제작 노트

“ 저는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자유연애를 믿었다는 거죠. 저에게 일부일처제는 사유 재산 같은 거였고, 저는 사유 재산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죠. 그 당시 우리의 우상은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르였어요.”


“ 결혼은 베트남전을 일으킨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죠. 저는 행위예술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인생도 행위예술의 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결혼은 끔찍한 인습인 셈이었죠. 그래서 결혼을 행위예술로 치부해버리기로 했어요.”


“미안해. 많이 늦었지? 자위할 정도의 사소한 일이 있었거든”


“내가 섹스하는 모습을 지켜봐 줄 수 있어?
내 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제가 섹스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오르페우스와 사이렌의 이야기와 유사하죠. 사이렌의 매혹적인 노래에 선원들이 죽어가자 위대한 가수였던 오르페우스는 묘책을 꺼내놓습니다. 노래를 시작했던 거죠. 그의 노래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사공들은 그의 노래에만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일어난 일과 같은 맥락이었어요. 더 아름다운 노래를 듣게 된거죠. 바로 맨디를 만난 일이었습니다.”


R등급 우디 앨런, 카베 자헤디!
뻔뻔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그 남자의 사정~

2006년 11월 안산국제넥스트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나는 섹스중독자>는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 영화로 극영화와 실제 기록필름이 뒤섞인 특이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제목부터 당당하게 자신이 섹스 중독자임을 밝히는 이 노골적인 영화는 카베 자헤디 감독의 자기고백적인 영화다. 첫 장면, 주연이자 감독인 카베는 세 번째 결혼식을 앞두고 턱시도를 입은 채 섹스 중독자로 살아온 자신의 20대 시절을 돌아보고, 섹스 중독을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힌다.

이후 감독 자신의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며 20대로 돌아가는 플래쉬백을 시작으로 아내와 닮은 포르노 배우를 캐스팅하기까지의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여자친구를 찍었던 과거의 실제 기록 필름과 극영화를 오가며 실험적인 형식을 보여준다. 더불어 영화 중간에 삽입된 <웨이킹 라이프>와 <스캐너 다클리>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담당했던 밥 새비스톤의 애니메이션 시퀀스는 영화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카메라 앞에서 직접 인터뷰를 하고, 과거를 재연하기도 하며, 배우 캐스팅 배경을 설명하거나 가난한 제작 환경을 탓하기도 하는 등 카베 자헤디 감독은 이 영화에서 우디 앨런을 능가하는 기발한 자의식과 블랙 유머를 보여준다. 물론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영화 형식에 있어서는 카베 자헤디 감독이 한 수 위다. 상식을 뛰어넘는 실험정신에 더해 사유재산을 반대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를 인정 할 수 없고,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르의 자유연애를 갈망하며, 결혼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자본주의체제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는 감독의 궤변은 시종일관 웃음을 선사한다.


디지털 영화의 새로운 관점, 새로운 사고, 새로운 시선!
‘근처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최고의 영화상’을 수상한 특별한 영화!!

<나는 섹스중독자>는 로테르담, 카를로비바리, 바르샤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어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정작 인디영화인들을 대상으로 주어지는 고담 어워즈에서 주는 ‘근처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최고의 영화상(Best Film Not Playing at a Theater Near You)’이 수상의 전부이다. 카베 자헤디 감독은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 이보다 딱 어울리는 상도 없을 법 하다. 그만큼 <나는 섹스중독자>는 충분히 기존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러티브와 영화 형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카베 자헤디 감독은 “기술이든 내용이든 어떤 면에서든 영화의 경계를 확장하지 않는 작품은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제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관점, 새로운 사고, 새로운 시선이다.”라고 말하며 디지털 작업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기동성 있고 자유로운 편집이 가능하며 저렴한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국내에서도 최근 디지털 영화들의 움직임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결 움직이기 편한 디지털 카메라와의 작업은 영화적 표현과 소재의 범위역시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디지털영화의 장점을 200% 살린 영화가 바로 <나는 섹스중독자>이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나는 섹스중독자>의 형식은 분명 디지털 영화가 단지 비용 절감을 위한 대안이 아님을 증명한다. 이에 대해 카베 자헤디 감독은 “디지털 카메라는 10초 만에 켤 수 있고 살아가는 도중의 어떤 순간을 바로 포착할 수 있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면 카메라를 켜고 설치하고 기타 등등 촬영준비가 되기까지 시간이 흐르게 되고, 포착하려 했던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간 뒤가 된다. 또한 어디든 갖고 다니면서 어떤 순간 눈길을 끄는 것을 촬영할 수 있다.” 며 디지털 영화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R등급 우디 앨런,
혹은 어느 별에서 온 괴짜 감독의 고군분투 영화 만들기!

카베 자헤디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를 즐기는 자전적 필름 메이커다. 그는 <더 이상 라스베가스를 싫어하지 않아>, <세계의 욕조 속에서>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영화의 소재로 삼아 왔다. “나는 내 삶을 기록하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는 그는 결점 많고 예민하면서 까칠한 자신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자기 고백적이고 때로는 자기학대적인 영화를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지식인의 자의식을 살짝 섞어 그려낸다는 점에서 그는 종종 우디 앨런과 비교되고 있다. 다만 비상업적인 그만의 방법에 의해 그의 영화는 주로 국제영화제(물론 메인 영화제는 아니다.)와 케이블 TV, DVD, 홈비디오, 그리고 최근에는 온라인 다운로드 유통망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1991년 첫 작품을 내놓은 이후 예산을 조달하기 어려웠던 1990년대에 그가 만든 영화는 두 편 뿐이었으나, 비디오와 디지털 작업을 시작한 2000년대 이후에는 현재까지 6편의 장, 단편을 완성했다.

카베 자헤디 감독은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할 당시 영화를 처음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스위스로 가서 장 뤽 고다르와 함께 일하려고 시도했으나 새벽 3시에 고다르에게 전화를 거는 바람에 거절을 당하며 어이없는 아픔을 겪는다. 실망한 카베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자폐아들을 상대로 비디오를 가르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자신을 자폐 환자로 오해하기 시작하자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 시인 랭보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파리로 간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 돈을 한 푼도 모으지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무일푼으로 <수퍼8>이라는 영화 제작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고 그는 영화 제작을 포기하고 대신 콜라주 작품을 만드는데 힘을 쏟는다.

몇 달 간 외롭게 콜라주 작품에 몰두 하던 그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세기의 포토그래퍼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와 함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텔레비전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지만 또 다시 실패하고, 토킹 헤드의 실험적인 뮤직 비디오 작업에 몰두한다. 뮤직비디오는 결국 2년 만에 완성했지만 이 역시 데이비드 번에게 깔끔하게 거절당한다.

처절하고 다양한 실패 앞에서 카베는 낙심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를 영화화 하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신청하여 지원을 받는다. 2년의 작업 시간 끝에 투자위원회에 최종 편집을 보여주지만 보조금 지원이 중단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프랑스 영화계에서 꿈이 좌절 된 후, 그는 UCLA 영화 학교에 지원을 한 후 좀 더 상업적인 영화들을 만들려는 희망을 안고 LA로 돌아온다. 그리고 결국 그간의 고난을 이겨내고 UCLA에서 그렉 왓킨스과 함께 만든 < A little Stiff>를 통해 선댄스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되어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