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에만 몰두하며 순수 예술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정치와 시류의 흐름을 쫓아 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종교화가의 안드레이 루블로프의 고뇌를 통해 예술의 본질 탐구와 동시에 당시의 사회상을 꼬집은 수작. 침략 전쟁, 기아, 질병에 고통받는 러시아 민중의 삶을 배경으로 '예술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 중 가장 '역사'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프레스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마치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를 보는듯한 웅장한 느낌을 준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폭주 기관차"의 감독 콘찰로프스키와 사석에서 대화하던 중에 신비의 베일에 싸여있던 15세기의 성상 화가 루블레프에 매력을 느껴 영화화할 것을 결심했다고 전한다.
작품소개
제22회 칸영화제 (1969) 심사위원특별상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Winner
- 진정 숭고한 타르코프스키의 정신, 예술가의 정신이 담긴 칸 영화제의 걸작 - 1400년 러시아 비쟌틴 미술의 선구자 “안드레이 류블로프” 삶의 이야기 - 20세기 최고의 러시아 영화감독 [희생][솔라리스]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그의 이토록 숭고한 예술영화!! 최고의 걸작!! - 이콘화가 류불로프의 수난기와 타르코프스키의 예술적 고뇌!! - 영화 감독 [안드레이 류블로프]와 [안드레이 류블로프] 전설적 화가의 생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효용성 길을 묻는다 - 이콘(종교, 신화등의 관념 체계를 바탕으로 특정한 의의를 지니고 제작된 미술 양식)
격정의 15세기 미술계의 아이콘이었던 안드레이 루블로프의 삶을 그린 영화. 역사의 기록에만 몰두하며 순수 예술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정치와 시류의 흐름을 쫓아 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종교화가의 안드레이 루블로프의 고뇌를 통해 예술의 본질 탐구와 동시에 당시의 사회상을 꼬집은 수작. 침략 전쟁, 기아, 질병에 고통 받는 러시아 민중의 삶을 배경으로 '예술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 중 가장 '역사'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프레스코'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마치 거대한 프레스코 벽화를 보는 듯한 웅장한 느낌을 준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폭주 기관차]의 감독 콘찰로프스키와 사석에서 대화하던 중에 신비의 베일에 싸여있던 15세기의 성상 화가 루블레프에 매력을 느껴 영화화할 것을 결심했다고 전한다.
‘삼위일체’로 유명한 15세기의 성상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인생과 고뇌를 그린 타르코프스키의 두 번째 장편으로, 9개의 에피소드가 연결된 프레스코 구조를 지닌다. 공개 당시 당국의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구소련 출신으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과 함께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평가받는 감독이자 시인이다. 인상적인 시각적 이미지와 상징적인 비주얼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영화에는 전통적인 줄거리와 드라마적인 요소는 빠져있다. 그의 몇몇 영화는 소련당국에 의해 자국 내에서의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는 1932년 4월 4일 볼가강변의 차브라세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 이바노브나(Maria Ivanovna)는 재능있는 배우였고 아버지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Arseniy Tarkovsky)는 저명한 시인이자 번역가였는데 그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시인인 아버지에게서 받은 문학적 영향으로 헤세나 토마스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는 진리와 완성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형상화되기도 한다. 그의 부모가 이혼했을 때, 안드레이와 그의 여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된다. 1939년부터 그는 모스크바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학교에서의 정규수업 외에 음악과 그림공부도 따로 했다. 이 때 그가 배웠던 러시아 전통음악과 그림에 대한 지식은 장중하면서도 느린, 풍경을 아름답게 잡아내는 영화의 특징을 형성시킨다. 1951년에 안드레이는 동양어 모스크바 학교(Moscow Institute for Oriental Languages)에 입학하지만 병 때문에 학교를 끝마치지 못하고 대신 1954년에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 입학한다. 여기서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스승, 미하일 일리히 롬(Mikhail Ilych Romm)을 만나고 졸업작품인 영화 [증기기관차와 바이올린 Katok I Skripka](60)을 만든다. 그의 첫 장편영화인 이 영화는 뉴욕 필름 페스티발에서 상을 수상한다.
그의 다음 작품 [이반의 어린시절 Ivanovo detstvo]은 1962년 모스크바에서 상영된다. 블라디미르 보고모로프(Vladimir Bogomolov)의 소설에 기초한 작품으로 작가인 블라디미르도 역시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특징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유장한 통테이크 미학이 잘 나타나있다. 영화에서는 억압받는 민중들의 이상향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경 근처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는 12살짜리 소년 이반에게 반영되어 있다. 그는 1964년에서 1965년 사이에 다음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 Andrei Rublyov]를 만드는데 이 영화는 성화를 그리는 화가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1969년 깐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상영된다. 이 영화는 화가라는 아이콘을 사용, 중세시대를 생생하게 구현해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1973년이 되어서야 소련 정부에 의해 수출이 승인되었다. 그의 다음 작품 [솔라리스 Solaris](71)는 공상과학영화로 [스토커 Stalker](79)와 함께 우화적인 작품 속에 정치적인 상황을 담고 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는 그의 영화가 인간구원에 대해 탐구하는 탈정치적이고 종교적인 특징을 보인다고 간주했던 이전의 시각과는 다른 방향에서 그를 평가한 견해이다. 이 두 영화 사이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을 바탕으로 자신이 각본을 써서 완성시킨 독창적이고 난해한 작품 [거울 Zerkalo](75)을 만들기도 한다. 이후 그는 모스크바에서 [햄릿]의 연극연출에 참여하고 영화 [노스탤지어 Nostalghia](83)를 촬영하기 위해 1982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와 구소련 합작으로 만든 이 영화를 위해 시인 토니노 구에라(Tonino Guerra)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이 영화는 '향수'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외국에 사는 예술가의 딜레마를 형상화한다. 자신의 조국에서 살지 못하고 외국에 머물지만 자신의 조국에서 벗어날 수 없고 향수를 느끼는 예술가의 운명을 보여주는데 이는 말년의 타르코프스키의 운명과도 비슷하다. 이탈리아에서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가 존경하는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Ernst Ingmar Bergman)은 매년 영화를 만드는데 비해 자신은 4,5년 만에 한 편꼴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러시아의 열악한 영화제작현실은 그를 절망하게 했다. 결국 그는 영화를 찍고 난 후 1984년에 서방세계에 남아있기로 결심한다. 1983년 가을, 런던에서 큰 성공을 거둔 오페라 [보리스 고드노프 Boris Godunov]를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1985년말 스웨덴에서 [희생 Offret]의 촬영을 마치고 로마로 간다. 그런데 그 때 그는 이미 병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영화 [희생]은 망명생활로 인한 향수에 육체적인 병까지 걸려 쇠약해진 그가 끝까지 놓지 못한 일종의 희망을 보여준다. 이미 말라버린 나무에 매일 물을 주면서 나무에서 꽃이 필 날을 기다리는 것은 인간구원을 그린 그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다. 그는 결국 1986년 12월 29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프랑스에 있는 러시아 망명자들을 위한 공동묘지에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