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1936년의 나날 [Days Of 36 / Meres Tou 36]

감독 : 테오 앙겔로풀로스

출연 : 반젤리스 카잔, 코스타스 파블로

메타삭스 장군의 군사 독재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1936년을 배경으로 반동적인 국회의원들의 퇴진에 관한 이야기. 처음에 정부쪽에서는 잠시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결국에 가서 인질범은 살해당한다. 이 살인은 더 큰 억압의 전주곡이었다.

감방과 취조실이 주된 배경이지만 이 영화의 호소력은 감방의 주위, 곧 길게 뻗은 복도, 밖으로 잠긴 감방 문, 감방 바깥의 마당 등을 이상하게 오래 잡아두는 연출에서 나온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주변 배경을 그렇게 오래 화면에 잡아두는 연출 의도는 애매모호하다. 그러나 앙겔로풀로스는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느낌을 주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의 독재를 표현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노조 지도자가 살해되고 전직 사기꾼이자 집행유예중인 소피아노가 용의자로 체포한다. 경찰의 끄나풀인 그는 직업을 잃지 않기 위해 감옥에 들어가서 자신과 연인관계인 유명한 보수당 국회의원의 방문을 받게 된다. 한편 감옥에 간 국회의원은 그곳에서 인질로 잡히게 되고 당국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이미 극에 달한 그리스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보여주는 <1936년의 나날>은 강요된 침묵과 검열로 이루어진 독재의 역사에 대한 고백처럼 이루어져있다.

- 비극과 희극은 동전의 양면이다!
- 메타삭스 장군의 군사 독재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1936년을 배경으로 반동적인 국회의원들의 퇴진에 관한 이야기!
- 현대 그리스 영화계의 위대한 거장이자 당대 최고의 창의적인 예술가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대표작!

<1936년의 나날>은 테오 앙겔로풀로스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다. 첫 번째 그리스 독립영화인 <범죄의 재구성>에 이어 범죄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리스의 정치상황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스의 군부파쇼시절에 저항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그리스 ‘역사 3부작’의 첫 작품인 <1936년의 나날>은 경찰의 끄나풀이었던 소피아노의 운명을 중심에 놓고 1936년 당시의 그리스역사를 그려낸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여준 360도회전 기법이나 추리극적 특징도 이 영화와 유사하다.

1936년은 그리스에서 이탈리아파쇼에 대응한 총파업이 전개되던 시기다. 영화에서는 1936년의 그런 상황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자막이 올라갈 때 지나가는 그 당시의 풍경들이 1936년의 전반적 모습이다. 영화는 탄광노동자들 앞에서 연설을 하려던 한 노조지도자가 총격을 당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경찰의 끄나풀이었던 소피아노는 쓸모가 없어지게 되자 이 총격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당하여 감옥에 갇힌다. 이에 격분한 소피아노는 면회 온 하원의원을 인질로 잡고 석방을 요구한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아무도 소피아노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 이들은 소피아노를 어떻게 제거하며 사태를 해결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소피아노와 위정자들 사이에서 밀고당기는 신경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교도소 내 정치범들이 줄기차게 저항한다.

<1936년의 나날>은 비극과 희극이 동전의 양면임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소피아노의 죽음이라는 결말을 놓고 보면 이는 비극이다. 압제자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 결국은 파멸의 길을 걷는 것은 그리스 역사가 낳은 비극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소피아노가 죽기까지 위정자들이 벌이는 소동은 하나하나의 일화가 모두 희극적이다. 이들이 소피아노를 독살하기 위해 독극물이 든 차를 준비했다가, 소피아노의 기지 있는 협박에 기겁하는 장면이 그 단적인 예다. 이 이야기가 블랙코메디의 장르로 더 전진하는 순간은 위정자들의 대열에 끼어있던 한 관료가 더 이상 못 참고 키득거릴 때다. 그러나 변호사도, 동료들도 소피아노를 구할 수가 없다. 소피아노는 역사의 변절자이므로 필연적으로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인물인 것이다. <1936년의 나날>이 결론적으로 비극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나날들이 있었다. 1936년은 우리에게도 압제의 시절이었으며 똑같이 일본제국주의의 끄나풀노릇을 하던 변절자가 있었다. 변절자들은 결국 쓸모가 없어지면 버림을 받고 파멸의 길을 걷는 법이다. <1936년의 나날>을 비롯한 ‘역사 3부작’을 접하면서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역사적 공통성 때문일 것이다. 앙겔로풀로스감독은 아시아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할 때마다 히로시마의 박물관에서 만난 조선청년의 일화를 꺼낸다. 그 청년은 <유랑극단>을 보고 조선의 역사가 바로 이러했다며 앙겔로풀로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연히 이런 영화가 코리아 이남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앙겔로풀로스의 철저한 역사의식이 압제와 혼란의 시절에도 신념을 견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답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1936년의 나날>은 정확하게 역사 속의 모순관계를 반영한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는 정치범들이 독안에 든 쥐처럼 교도관들의 추격을 받다가 결국은 잡히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된 갈등은 정치범과 교도관들, 변절자와 위정자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유랑극단>이나 <사냥꾼들>과 다르게 이 영화에는 저항군의 모습이 한번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1936년의 가장 첨예한 모순관계였던 저항군과 독일, 이탈리아파쇼세력간의 대치가 아니라 변절자와 위정자(대리세력) 간의 대립을 중심에 놓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적대적 모순이되 외부파시스트세력에 비해 부차적인 모순의 해결과정은 위정자가 아니라 변절자의 파멸로 이어질 뿐이다. <1936년의 나날>은 역사적 비극을 은막위로 옮겨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역사적 비극의 정확한 상관관계를 해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유랑극단>과 달리 답답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비본질적 측면 때문이다. 복잡한 사물현상 속에서 역사적 본질만을 정확하게 베어내기 위해서는 감독의 역사관이 예리하게 벼려져 있어야 한다는 점이 재삼 확인된다.

유럽의 대표적인 좌파감독이라는 앙겔로풀로스의 <1936년의 나날>은 그리스의 폭압적 정치상황을 전 세계로 알려낸 출발점이다. 이후 <유랑극단>이 파쇼정권의 감시를 뚫고 몰래 깐느에 출품되어 국제비평가상을 받으면서, 앙겔로풀로스는 그리스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영화들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여전히 주제의식은 일관되나 방식이 보다 추상화되고 간접화된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적 곡절의 뿌리를 역설적이게도 초기작 중 하나인 <1936년의 나날>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의 본질적 관계를 해명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므로 감독의 주제의식이 영화의 화면구성(미장센)을 비롯한 전반의 기법을 결정하는 것이다.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1936년의 나날>에서는 앙겔로풀로스의 빛과 어둠도 동시에 공존한다.
<월간 COREA 2004년 11월호 발췌 강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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